답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고향에서 답을 찾다.
추운 겨울, 서울에서의 고된 일상에 지친 혜원은 고향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래 비워두어 싸늘한 집에 불을 지피고 나니 배가 고파집니다. 부엌 이곳저곳을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아보지만 오래 비워 둔 탓에 먹을 만한 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쌀독에서 반갑게도 한 줌의 쌀을 발견하고는 눈 덮은 밭에서 마르지 않은 작은 배추하나와 파뿌리 하나를 캐옵니다. 보글보글 쌀을 안치고 된장국물에 배추를 넣고 파도 송송 썰어 넣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니 잠이 솔솔 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치우고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제비를 준비합니다. 찬장에 조금 남아 있던 밀가루로 반죽을 한 후 숙성을 시켜놓고 장화를 야무지게 신고 마당에 눈을 치워줍니다. 따뜻한 수제비와 어제 먹고 남은 배춧잎 두 장으로 배추 전까지 같이 먹으니 언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습니다. 혜원에게 남은 음식은 이제 없습니다. 읍내에 다녀오거나 근처 사는 고모에게 자진납세를 해야 하지만 자신이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고향 친구 은숙이 집으로 찾아와 왜 온 것을 알리지 않았냐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남자친구는 시험에 붙고 자존심이 상해서 내려온 거냐는 은숙의 말에 혜원은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고 대답합니다. 혜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임용고시 공부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제대로 된 음식보다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으로 때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날 밤 혜원은 바깥의 고라니의 울음소리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피곤한 아침을 맞이해 툇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런 혜원에게 굴뚝 연기를 본 고모가 찾아오고 아침밥을 얻어 먹고 이것저것 잔뜩 받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고3 수능을 본 직후 편지만 남겨 놓은 채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그 후 혜원도 대학교에 입학하며 이 고향집을 떠났었고, 혜원과 혜원의 엄마는 그 후 몇 년째 아무런 소식도 주고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고모집에서 돌아온 혜원의 집에는 고향 친구인 재하가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혼자 잘 때 무서우니 데리고 자라고 말하는 재하에게 혜원은 자기는 곧 서울로 돌아갈 거라 대답합니다. 강아지의 이름은 '오구'라고 이야기하고 재하는 강아지를 혜원의 집에 놔두고 갑니다. 그날 밤 역시 잠들기 무서웠던 혜원이 오구와 방 안으로 불러 같이 잠들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합니다. 혜원은 재하와 은숙과 함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막걸리를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술에 취해 잠든 듯 한 재하는 자신이 선택한 농부라는 직업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중얼거리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혜원은 자신도 봄까지 있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고향집에 더 머무르게 됩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떠난 엄마이지만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편지가 혜원에게 도착합니다. 편지의 내용이 감자빵 레시피라는 것에 어이없어하는 혜원에게 재하는 너도 너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엄마에게 보내보라고 말하지만 엄마의 주소도 모르기에 답장도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갑니다. 어느덧 여름이 찾아오고 평화로울 것만 같은 시골생활에도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회사 상사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던 은숙에게 혜원은 그럼 그만둬라고 말하고 자기 일이 아니라 쉽게 말한다고 느낀 은숙은 혜원에게 화를 냅니다. 혜원은 은숙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엄마가 혜원의 어린 시절 속이 상했을 때 만들어 주었던 음식을 가져다주고 은숙의 마음도 풀어집니다. 혜원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고민을 서서히 정리해 갑니다. 혜원은 계속 피하기만 했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 말하고 자신은 고향으로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 말하며 남자친구와 이별합니다. 어느덧 밤조림이 맛있는 계절인 가을이 찾아옵니다. 늦은 태풍에 쓰러진 벼를 세우고 사과농사를 하는 재하가 걱정돼 찾아갑니다.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혜원에게 재하는 계속 몸만 바쁘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혜원은 재하의 말에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회피하고만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혜원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어가는 고향을 둘러보며 어릴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들을 어렴풋이 알 것 같음을 느낍니다. 그제야 엄마가 떠나면서 두고 갔던 편지를 읽어보게 되고 그날 밤 엄마의 편지에 답장을 씁니다. 고향에 다시 돌아왔던 그날처럼 추운 겨울 혜원은
쪽지 한장을 남기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소리소문도 없이 올라가 버린 혜원에 대한 볼멘소리를 하는 은숙에게 혜원이 금방 다시 돌아올 것 같다고 혜원은 지금 아주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다시 따뜻한 봄이 된 고향집으로 혜원은 돌아오고 고향집엔 혜원이 아닌 다른 사람도 돌아왔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자연과 음식으로 힐링되는 영화
이 영화를 총 5번은 본 것 같습니다. 마음이 힘들거나 고요하게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다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골집, 시골풍경, 혜원과 혜원의 엄마가 만들던 음식들 모든 게 힐링이 되어 주었습니다. 영화 속 시골집에서 혜원처럼 평화롭게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혜원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혜원처럼 저 역시 현실도피로 이 영화를 자주 선택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의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 영화 속으로 들어가 고즈넉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혜원이를 두고 집을 나간 혜원의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고 싶다는 편지 내용을 보고 나서도 쉽게 이해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엄마는 혜원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혜원이 자연 속에서 자라며 언제든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고향의 자연 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혜원이를 키워왔던 것입니다. 이제는 혜원이 그럴 수 있다고 믿기에 혜원이 홀로서기를 바라며 엄마 역시 홀로서기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며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 발자국 떨어져 문제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감정에 매몰되어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다면 계속 오답만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망치듯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도망 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고 이곳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엄마 덕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혜원의 상처도 치유됩니다. 자연친화적인 감독인 임순례의 작품이기에 여기저기에 따뜻함이 묻어 있습니다. 시골의 초록초록함과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음식에서 그 따뜻함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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